12시에 오겠다던 집주인은 일언도 없이 12시 25분이 되어서야 청년 한 명과 집을 둘러보러 왔다. 12시가 되기 5분 전에 잠에서 깨, 손님을 맞을 준비랍시고 가만히 앉아있던 나는 시계를 보며 육성으로 짜증을 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나가면서 주말에 찾아와 죄송하다며 웃는 그에게, 나 역시 괜찮다며 같은 웃음을 돌려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물론 계약이 끝나는 날 보증금만 돌려받는다면 나와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이 집이 얼른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고 있기도 했다.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는 다시 잠, 잠만 자다가 밖으로 나갔다. 2천 원이면 갈 수 있는 천국에서 김밥과 라면을 먹는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열댓 명의 중국인이 그곳에 있었다. 저도 모르게 의식을 하는 내가 우스웠지만,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돈 주고 산 밥을 열심히 먹는 것뿐이었다.
서울역 멤버십라운지에 올라가 다운받아뒀던 소설들을 출력하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왔다. 그때 나는 감명 깊게 본 단편 웹툰을 다시 한번 보다가,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궁금해하던 차였다. 같은 N사에는 아무것도 없길래 찾아보니, 이미 다른 사이트에서 연재 중이었고, 큰 흥미는 없었지만 시간 때우기로 그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분명 '귀가'라는 뚜렷하고도 중요한 과업이 있었는데도… 나는 이제 휴대폰 없이는 잘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이전의 단편도 그렇고 신작인 시리즈물도 그렇고 그 작가는, 한계에 다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그리는 듯했다. 정신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나는 한 장면에서 불현듯 손을 멈췄다.
- 울음을 참는 순간은, 왜 이렇게 뜨거울까.
하필 그때 내가 듣고 있던 음악은 가사가 영어로 된 힙합곡이었으므로, 어떤 말에도 방해받지 않고 곱씹을 수 있었다. '울음을 참는 순간의 뜨거움'에 대해 생각하며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앞에는 두 손으로 핫팩 하나를 얼굴에 꼭 갖다 대고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기대어 앉아있는 노년의 남자가 있었다. 멀리서 보면 꼭…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 남은 거라곤 몇 시간의 수명이 남은 핫팩과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기엔 턱없이 작아 보이는 배낭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가 울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는, 가까이서 그를 보았을 때 무서울 정도로 미동도 소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대로 거기서 죽을 것처럼… 내 시선을 붙잡아두었다.
그의 뜨거움을 그 핫팩은 얼마나 더 지켜줬을까. 그 온도가 다 식은 후에 그는, 그것을 어디로 내보낼 셈이었길래 그렇게 태아 같은 모습으로 차가운 바닥 위를 부유하고 있었을까. 서울역 인근에 살며 노숙자를 보는 것은 지나치게 흔한 일임에도, 오늘 나는 왜 그에게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을까….
집에 와서는 과금을 해가며 웹툰을 끝까지 보았다. 보다가 갑자기… 울어버렸다. 별로 울만 한 장면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눈물이 나서 소리 내어 울었다. 울면서도 내가 왜 우는지 설명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사는 것의 장점이다.
울음을 참는 순간은 왜 그렇게 뜨거울까.
외로움이 너무 차가워서 울음은 뜨거운 걸까. 거기서 더 식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뭐 그런 걸까.
새벽이 눈이 온다고 하는데, 오늘 밤이 역사 안의 그에게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경은 지금 기분이 방치된 냉장고의 문을 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오래도록 방치해둔 탓에 음식은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나고, 벌레는 꼬이고, 곰팡이가 슬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반드시, 문을 열어 청소를 해야 했다.
ㅡ 해영채 「나를 햇볕에 뭍어줘」中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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