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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일기

2020/02/12 친해지는 중

by 굿게랑 2020. 2. 12.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한 후와 나는, 잠시 아티스트가 되었었다. 영상통화를 통해 그는 작곡을 하고 나는 작사를 도왔는데, 겉보기엔 그럴듯했지만 역시나 무산됐다. 이런 컨셉이 좋겠어, 라며 곡의 스토리를 짜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요즘의 생각과 고민에 관해 이야기했다. 결국 30분 정도밖에 못 자고 PC방에 가야 했다. 나를 깨워준 G가 곧바로 ss와 함께 영상 통화를 걸어와서, 우리는 9시간을 사이에 두고 의미 없지만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해댔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는 멀리서 함께 여행하고 있는 G, S, ss를 보며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별로 많은 것을 하지도 않겠지만, 낯선 곳에서 '놀 의무'를 지고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의 내겐 절실했다.

 

일찍 일어난 건 부전공 수강 신청을 위해서였는데, 내가 복수전공 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여서 헛걸음을 했다. 한탄은 했지만 사실 별로 억울하진 않았다. 납득이 가는 일이었기에…. 결국 아침에 한 일이라곤 생애 몇 번째일지 모를 투명우산을 산 것뿐이었다.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세탁기의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고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내자, 곧바로 사람이 갈 거라고 했다. '바로'가 언제쯤일까… 생각하고 있으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는 자신을 '주인'이라 소개했고, 문자를 한 사람은 본인의 아들인데 이 동네에서 꽃집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곧이어 드럼세탁기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저게 진짜 나와?'라고 생각이 들 만큼 꽤 힘이 들어 보였다. 그가 오랜 사투 끝에 세탁기를 끄집어내고, 접촉 불량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콘센트를 이리저리 만지니 전원이 켜졌다. 예상 가능한 문제였지만 싱크대를 통해서 볼 수 없는 위치에 콘센트가 있는 게 문제였다.

찌질함이 관성처럼 남아있던 나는 자꾸 감사하다고 말했고, 주인은 그에 감사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지, 하고는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본인이 근처에 살고 있으니 직접 말하라며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일전에 이삿날을 더 당길 수 없냐고 중개인과 집주인이 입씨름하던 것이 생각났다. 내 편견만큼 까탈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탁기는 고쳐졌고,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나는 잠을 못 잔 상태였다. 그래서낮잠을 좀 잔다는 게… 거의 다섯 시간을 내리 자버렸다. 꿈에서는 소설을 못 읽었는데 벌써 독토 날이 와버려서, 나는 엄청난 긴장 상태로 Y와 함께 인쇄소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식겁했는데,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일어나니 저녁이 되어가고 있어 세탁소에 이불을 맡기러 갔다. 언제 오면 되냐는 내 물음에 세탁소 아주머니는 한껏 미소지으시며 급하면 내일도 되지요,랬다. 오늘은… 친절한 사람을 몇 마주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겨우 동네의 한 대학교 앞 인쇄소에서 소설을 프린트하고, 카페로 가 그것을 읽었다.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내일은 맑았으면 좋겠다. 인터넷으로 찾아둔 동네 카페 중에 화초가 가득한 곳이 있는데, 화창할 때 가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훗날에 자질구레한 후회를 하지 않도록, 점점 동네와 친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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