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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일기

2020/03/28 경주로

by 굿게랑 2020. 3. 28.

 

경주에 왔다. 드디어.
아빠는 주유 영수증을 보고는 주유비 3만 원을 내라고, 나는 원래 그런 건 차주가 내는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둘이서 했다. 요지는 내가 오늘 이 차를 훔쳐서 경주로 달아날 거라는 것.
원래는 같이 갈 계획이었지만 아빠의 스케줄이 틀어졌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약간의 통쾌함과 안타까움이 반씩 섞인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쌩 떠났다.

 

가는 길에 있는 공원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정말 넘쳐서 쏟아질 것만 같은 분홍 꽃들이었다. 이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다니… 몇 주 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과 학교의 구름다리에도 예쁘게 피어있을 꽃을 떠올렸다. 슬픈 것에는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1시간여를 달려 우리의 새집 앞에 당도했다. 자질구레한 짐박스들을 올려놓고 쉬다, 시내로 나갔다. 여기는 경주 시내보다는 울산 시내가 더 가까운, 완전히 경계에 위치한 곳이다. 덕분에 5분 정도 달리면 '울산광역시에 진입하였습니다.'라는 내비게이션 놈의 코멘트를 들을 수 있다.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올리브영을 들러서 향초를 샀다. 내 방이 있지만 사실상 내가 없는 시간이 더 많을 곳에 주는, 첫 번째 이사 선물이었다.

 

엄마가 미역을 사서 퇴근했다. 나란히 밥을 먹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익숙하고 반가운 기분에 묘하게 들떴다. 아침에는 CJ에서 만든 미역국을, 오후에는 엄마가 만든 미역국을 먹었다. 맛도 양도 분위기도 후자가 압승이다.

 

동네가 미치도록 조용하다. 정말이지… 이 아파트 단지에 가구가 얼마나 있는지 세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적막한 집에서, 내가 서울에서 겪은 외로움만큼을 엄마도 겪었을까? 아니면 일을 하느라 바빠 그런 건 몰랐을까?
확실한 건, 내가 기쁜 만큼 엄마도 나를 보아 기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게 내 착각이라면, 오늘 밤 향초가 타오르는 냄새에 취한 덕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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