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기까지에는 1년의 간격이 있었다. 그야말로 별것도 없는 날들의 집합이었다.
처음에는 독학을 해보겠답시고 미리 받은 입학 선물인 노트북을 들고 독서실로 나섰다. 등록한 한 달 중 내가 출석한 것은 고작 3일이었다. 10%라는 놀라운 출석률에 충격받은 나는 달이 넘어가자마자 바로 엄마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학원을 다녀야겠어.. 날 강제해줄 것이 필요해...
당장 다음 주부터 나는 유명 재수 학원의 수강생이 되었고 이후의 일상은 쭉 같았다.
아침 6시 30분쯤 일어나, 늘 입는 검정색 트레이닝 바지에 웃옷만 바꿔 입으며 2호선에서 3개 역을, 3호선에서 7개 역을 지났다. 밤 10시가 되면 아침에 갔던 길을 그대로 뒤집어서 집으로 돌아갔고, 어느 날부터는 2호선으로 갈아타지 않고 환승역에 있는 독서실로 향했으며, 거기에 질렸을 때부터는 버스를 타고 집과 가까운 거리의 독서실로 향했다.
이따금 나의 일대기(?)를 떠올릴 때면 망설일 것도 없이 스킵해버리는 중간광고 같은, 변화는 없고 변덕만 있었던 아홉 달이었다.
마찬가지로 변함없는 하루의 끝 새벽 2시에는 독서실 앞으로 나를 데리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고했다, 가방 줘.
변함없는 대사도 있었다. 거기에는 변덕도 없었다.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이제는 한 장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독서실 앞 새벽, 대개 작은 경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가끔은 사람만이 있었다. 집으로 가는 몇 분 동안 보통은 짧고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때로는 정적이 그와 나 사이를 지켰다. 대답할 힘도 없는 날에 그랬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늦게까지 깨어있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끔뻑 졸다가도 내가 현관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놀라 눈을 크게 뜨고는, 왔냐고 물었다. 일부러 잠들지 않은 티가 났다.
다섯 해를 더 보내고 밤잠이 없어진 엄마는 요즘 아무 일 없이도 새벽 2시까지 잠들지 못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이제는 기다린다 한들 내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데도 그렇게 됐다.
공기보다는 싸늘해야 마땅한 사물들이 미묘한 생물처럼 미열을 품고 있었다. 그 미적지근한 온기를 참을 수 없어 d는 사물과의 접촉을 줄였다.
인간의 마음은 턱에 있다고 d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턱이 아팠으니까. (…) 위턱과 아래턱, 턱을 짓누르는 턱, 그 간격에, 서로 다른 극끼리 붙은 자석처럼 꽉 달라붙은 그 간격에 간신히. 녹슨 자물쇠로 꽉 잠긴 듯한 입속에. 뻣뻣한 혀와 화약 맛이 도는 침에. 마음은 그런 데 있어.
소설을 읽으며 눈에 띈 특징 중 하나는 공간적 성질을 띤 묘사가 빈번히 등장한다는 것이다. 노파들은 B02호의 창문을 통해 d가 사는 반지하로 음식을 건네고, 집주인의 사위 역시 굳이 그 창문을 사이에 두고서 d와 대화하며, d가 그 집을 나오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또 그는 구민회관의 남쪽 창을 통해 수영장을 내려다보고….
1983년 남북의 경계를 향해 날아가던 이웅평 대위, 246페이지와 정반대인 247페이지를 나누는 가름끈, 진공과도 같았던 세종대로의 빈 공간, 앰프의 소리를 살리는 진공관. 어떤 것들을 가르면서 갈라진 그것들을 잇기도 하는 무언가가 계속 d의 마음에 머문다.
때에 따라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창, 경계, 간격, 틈.
그리고 텅 빈 진공인 줄 알았던 곳에 기어코 남아있는 열, 잡음, 마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소설을 다시 짚어보면, 처음에는 알 수 없었던 어떤 것들을 더 가까이 에두를 수 있게 된다.
사람은 떠나도 사물은 남겨져서 미열을 품고, 소리가 멎은 세계에도 잡음이 흔적으로 남아 공간을 메우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어둠 속에도 최종적으로 마음이 있다. 텅 빈 것은 아무 데도 없다.
어떤 간격이나 틈에도 그런 것들이 남아서, 이전의 세계와 다시 시작될 공명을 연결한다. 때로는 미미한 열로, 때로는 작은 소리로, '조짐'을 보내며 다음을 기다린다. 누군가는 혁명이라 부르기도 하는 때. 그렇기에 조짐을 예사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 다 어디 갔어? 그러니까…… 세운상가에 사람이 많았잖아. 아빠가 알고 지낸 사람들. 아빠만큼 오랫동안 거기서 장사한 사람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 수리실에 가 있으면 빵빠레나 감자칩이나 양생을 사주던 아저씨들, 아줌마들. 그들이 지금은 상가에 남아 있지 않은데 다 어디로 갔느냐고 딸은 묻고 있었다. (…)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그의 수리실은 세상 적막한 곳에 당도해 있었다. 인기척 없는 황무지 기슭에.
진공관은 소리를 좌우한다고 그는 말했다. (…) d는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얇은 유리 껍질 속 진공을 들여다보며 수일 전 박조배와 머물렀던 공간을 생각했다. 그 진공을. 그것은 넓고 어둡고 고요하게 정지해 있었으나 이 작고 사소한 진공은 흐르는 빛과 신호로 채워져 있었다. d는 다시,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느꼈던 진공을, 문득 흐름이 사라진 그 공간과 그 너머, 거기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 d는 무심코 손을 내밀어 그 투명한 구(球)를 잡아보았다. 섬뜩한 열을 느끼고 손을 뗐다. 쓰라렸다. (…) 우습게 보지 말라고 여소녀가 말했다. 그것이 무척 뜨거우니, 조심을 하라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세운상가에 남겨진 '나머지'인 여소녀는, 자신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지워버릴, 거짓말뿐인 재생사업은 거부한다. 소외되거나 귀신 취급당하며 쫓겨나고 싶지 않기에, 마치 틀니를 혐오하듯이. 그런 그는 소리를 살리는 일을 한다. d는 dd의 죽음이 조그만 점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고, 진공과 같은 세종대로 사거리를 무엇도 통과할 수 없을 거라고 낙담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기를 나도 바란다. 남겨진 존재이자 소리를 살리는 여소녀를 만난 일이 다시 d를 공명하게 하기를.
매트리스를 짓누를 때 말고는 존재감도 무게도 없이 무해한 그들, 내 이웃. 유령적이고도 관념적인 그 존재들은 드디어 물리적 존재가 되었다. 사악한 이웃의 벽들 두들기는 인간으로. 음악이 다시 시작되었다.
선을 넘는 것은 절대 쉬운 것도 옳은 것도 아니기에, 무어라 단언할 수 없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이 불행일지 행운일지 혹은 아무것도 아닐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불확정적이고 불안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주저하며, 이것은 명백한 자유다. 다만 유념해야 한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건, 경계를 넘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을. 넘어본 자만이 거기에 무엇이 있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대수롭지 않게 나의 역사에서 지워버리던 스무 살의 1년 역시, 사실은 무척 뜨거운 것들로 채워져 있었을지 모른다.
말을 잃어가는 아이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던 남자와, 감기는 눈을 붙잡고 새벽을 기다리던 밤잠 많은 여자가 매일에 있었다.
윤곽조차 그려지지 않는 미래를 붙잡고 겨우 살아가던 나도 거기에 있었다.
그런 내게 파이팅, 짧은 한 마디를 하려고 먼 길을 달려온 아이들도 있었다.
스물하나의 나를 있게 하려고, 많은 마음들이 그 간격에서 결코 약하지 않은 열을 품고 둥, 둥, 뛰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기억을 셀 때 그 구간을 건너 뛰곤 하겠지만, 지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내 삶에서 무언가를 바꾸고 싶을 때, 바꿔야 할 때, 그 시간이 내게 주거나 빼앗은 것들이, 남은 흔적이, 그 불쾌했던 온도와 잡음이, 나를 추동하며 무언가를 이을 수 있기를 바라고 믿는다.
* 감상 - 웃는 남자(d) / 황정은
* 연결되는 이전의 다른 소설을 읽지 않은 채여서 감상이 평면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언젠가 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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